[홍대스트리트북스] 가난과 우아함

북에디터 정선영 / 기사승인 : 2023-12-13 0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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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역자: 김인순 |열린책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도도서가=북에디터 정선영] 장기 불황이다. 개인은 살아내기 위해 저마다 고육지책을 고안해내고 있다. 자신의 소비지출을 공유하고 절약을 유도하는 일명 ‘거지방’ 오픈채팅방이 유행이라는 얘기를 들은 지도 좀 됐다.

 

최근 이곳에서 ‘겨울 슬리퍼’가 화제다. 여름에 신던 슬리퍼는 발이 시려 겨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여기에 도톰한 긴 발목 양말 혹은 낡은 니트를 덮어씌워 보온을 더하는 발상이다.

 

바닥이 미끄러워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당장 고유가 시대 치솟는 겨울 난방비 걱정이 앞선다. 문득 책상 사이로 낡은 겨울 슬리퍼를 내려다보곤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같이 놓고 싶어 한다. 몇 날 며칠을 라면에 김치만 먹었을지언정 외출할 때는 바르고 깨끗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적어도 남 앞에서 나의 곤궁함은 애써 숨기려 한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저자는 한때 잘나가는 언론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조조정으로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고 만다. 다행히 비교적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는 독일 사람이라 적지 않은 금액의 실업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저자는 이때야말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라고 굳게 확신했다고 단언한다. (전과 비교하여) 가난해지는 경우에 올바른 태도로 잘 대처하면 전적으로 불행이 아니라, 어쩌면 생활방식을 세련되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어린 시절 삼촌을 떠올리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취향과 생활양식이 삶을 주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삼촌은 쇠락해가는 낡은 건물 1층 작은 집에서도 날이 밝으면 창문을 열고 매트리스를 어딘가에 치워두고 낡은 찻잔 세트로 손님을 맞았다. 조촐할지라도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집안을 감돌았다.

 

‘아무리 통장이 적자 상태이고 집이 협소하더라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사람은 손님 식사 초대 기회를 절대로 포기하는 않는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중, 이 책에서 굳이 길게 말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옷이다. 옷에 대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볼썽사납게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고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론은 이렇다. 우아함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며, 옷을 건전하게 경멸하는 사람만이 우아하게 보일 수 있다.

 

지금 세상은 대다수 사람이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없건만 사람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은 단지 우아해지는 것이다. 물론 당신이 우아하길 원한다면 말이다.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되었으며 한국에는 2006년에 소개되었다. 현재는 2019년에 나온 개정판을 구입할 수 있다. 사진에 있는 책은 2006년 판이다.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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