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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의 최근 예상이다. 금방 러시아의 패배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이 아니던가?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서방 주류언론들은 미국에 일방으로 기울어진 보도를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과 종전 예상 등에 많은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러시아의 전쟁 능력이나 정치 상황 등에 대해 심각한 오판이나 왜곡을 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잘못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바이든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 배를 탄 동업자라는 사실을 파묻어 버렸다. 이는 많은 국외자들이 전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예측하지 못하게 했다.
바이든은 푸틴의 전쟁 욕망에 결정적 불을 지폈다.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바이든은 푸틴에게 외교 정책에 관한 비밀 중재를 부탁했다. 푸틴을 ‘살인 독재자’, ‘전쟁 범죄자’로 매도하던 바이든이 뒤로는 푸틴에게 외교를 구걸했다. 이해하기 힘든 이중 행태다. 바이든에게 푸틴은 적이 아니었다. 협조를 얻고 의존해야 할 존재였다. 이 기묘한 상관의 연결고리는 두 가지. 첫째는 ‘노드스트림 2’ 둘째는 이란 핵 협정이다.
■ 푸틴을 위한 바이든의 선물
바이든은 2021년 5월 ‘노드 스트림 2(러시아에서 독일로 직접 연결되는 해저 가스관)’에 대한 모든 제재를 풀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막대한 이익을 주는 것이라며 공사를 중단시키고 경제 제재를 한 프로젝트였다.
2018년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에게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 러시아는 가스관을 차단할 것이다. 독일은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경고했다. 메르켈은 무시했다. 미국에서 트럼프는 메르켈에게 항복을 의미하는 흰 손수건을 던져주며 “러시아에 항복하려느냐. 해마다 수십억 달러를 주면서 에너지 속국이 될 것인가”라며 노드 스트림 2 강행을 다시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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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푸틴./픽사베이 |
바이든의 제재 해제에 젤렌스키가 놀랐다. 실망한 젤렌스키는 “러시아 손에 무기를 쥐어 주었다”고 한탄했다. 러시아의 가스는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공급됐다. 그러나 노드 스트림 2는 발틱해에서 바로 독일로 이어진다. 수도 키에프를 우회해 고립시킨다. 러시아는 이제 우크라이나의 가스관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푸틴으로서는 독일 등 유럽으로부터 오는 엄청난 수입을 안전하게 확보하게 되었다.
젤렌스키는 “미국이 러시아에 탄환을 공급하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의 삶이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서 마이클 조단과 같은 인물인 바이든이 마지막에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이든을 기적 같은 슛으로 승부를 결정짓던 농구의 신 조단에 비유했다. 멍청한 평가였다. 그의 불길한 조짐은 비극적 현실이 되었다. 전쟁을 막기는커녕 푸틴의 욕망을 북돋아 준 바이든을 지금의 젤렌스키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란 핵 협정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바이든 부통령이 이란과 비밀협상을 벌여 2015년 러시아, 중국 등 5개국이 공동 서명한 비핵화 방안. 2018년 트럼프는 “핵을 용인하면서도 막대한 비밀 자금을 이란에 준 최악의 협정”이라며 탈퇴했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협정 복원을 선언했다. 오바마의 ‘아바타’라는 바이든으로서는 ‘오바마 외교 정책의 대표’인 이 협정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이란은 협상을 강력히 반대했다.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를 완전 해제하고, 피해보상 1,250조원을 먼저 요구했다. 미국과의 만남조차 거부했다. 막무가내인 이란을 끌어들이기 위해 바이든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푸틴이었다.
미국의 800여 가지 제재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란에게 러시아는 절대 후원자이다. 이란은 푸틴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든이 노드 스트림 2 제재를 푼 것도 푸틴의 도움을 받기 위한 사전 포석의 선물이었다.
■ 미국과 러시아의 비밀거래
미국이 핵 협정 복원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2021년 12월 푸틴의 참모들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만난 것이다. 바이든과 푸틴은 화상 회의를 가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군사력을 증강 배치를 할 때쯤이었다. 침공 우려가 높아지고 있었지만 바이든은 푸틴에게 회담 중재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눈에 보이는데도 푸틴에게 의존한 것은 바이든의 중대한 전략적 잘못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오로지 ‘협정 복귀’만을 위해 갖은 굴욕을 겪으면서 이란에게 양보를 거듭했다. 회담은 ‘비대면 간접대화’라는, 세계 외교사에서도 보기 드문 희한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회담 날짜도 이란 마음대로 정했다. 러시아는 이란이 핵무장 국가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경제·정치· 군사의 종속국이 되기를 바란다. 핵 협상을 통해 이란을 볼모로 삼아 서방과의 게임에 임했다. 모든 협상은 러시아 대표가 이끌었다. 중국이 힘을 보탰다.
오바마–바이든 팀이 이란을 다루기 위해 모스코바와 호흡을 맞춘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1년 3월 시리아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였다. 미국의 동맹국들은 백악관에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의 유혈 진압을 막으라고 요청했다. 오바마는 무시했다. 이미 오바마는 이란과 핵 협정을 은밀하게 추진 중이었다. 그는 이란과 무슬림 지지자였다. 협정은 그들을 돕기 위한 것.
아사드는 이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였다. 두 나라는 군사적으로 시리아의 배후 세력이다. 만약 아사드를 건드릴 경우 이란과의 핵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바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유엔에서 반 아사드 결의안이 제기될 때마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부탁했다. 러시아를 활용해 철권 독재자 아사드를 도왔다. 대신 러시아 전투기가 시리아 국경에서 튀르케 전투기를 격추했을 때 백악관은 ‘단순 사고’라는 모스코바의 설명을 지지했다.
특히 2014년 푸틴이 크리미아 반도와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일부를 침공했을 때 오바마는 사실 눈을 감아 주었다. 러시아 없이는 막바지에 이른 이란과의 핵 협상이 성사될 수 없었기 때문. 오바마는 그만큼 강하게 핵 협정에 집착했다. 이때 오바마와 바이든을 경험한 푸틴으로서는 다시 이란 중재를 부탁받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푸틴은 오바마 외교 유산 계승이 제1목표인 바이든이 핵 협정 복귀를 위해 어떤 것도 삼킬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 봤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보면서 바이든의 허약함을 간파했다. 노드 스트림 2까지 확보된 만큼 푸틴은 거침없이 전쟁을 밀어붙였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공언하고 푸틴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푸틴은 이런 것들이 크리미아 반도 침공에 대한 오바마의 의미 없는 제재만큼이나 공허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바이든은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3월 폴란드에서 “푸틴은 권좌에서 쫓겨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푸틴은 전쟁 범죄자다. 잔인한 인간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1,100억 달러를 지원했다. 문제는 그러면서 러시아를 통한 이란과의 협상을 계속한 것이다. 위선이다. 우크라이나와 세계를 속였다.
더구나 러시아의 라프로프 외무장관은 미국의 제재가 러시아의 핵 협상 협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을 보장하는 미국 문서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핵 협정으로 푸틴이 보장받는 현금 유입이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협상이 이뤄지면 푸틴과 그 세력들은 이란의 원전과 발전소 공사대금, 농축 우라늄 보관료 등으로 100억 달러 이상을 챙길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바이든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를 상쇄하고도 남을 액수였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바이든을 향해 “러시아가 우리를 위해 협상하지 못하도록 해라”며 “바이든의 외교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적국인 이란과 협상하기 위해 탱크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러시아를 활용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한 언론인은 “바이든 백악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 푸틴의 진실성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불행하게도 틀렸다. 놀란 것은 러시아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를 우크라이나에서 만들면서도 미국의 승인 아래 핵 협상을 지휘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들의 쓴소리를 무시했다. 뉴욕타임즈 등 주류언론들도 외면한 채 전쟁 지원만을 옹호했다.
이란 핵 협상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지나친 양보를 항의하던 미국 부대표 등 3명이 비엔나에서 중도 귀국하는 내분이 일어났다. 이란의 격렬한 반정부 시위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 오만에서 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적국인가?”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그렇다고 할 것이다. “냉전의 주역들이 아닌가?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과 푸틴의 기묘한 관계를 보면 두 나라는 협조국에 더 가까워 보인다. 국제정세란 상식을 배반하기 일쑤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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