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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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 북에디터 |
[도도서가=북에디터 정선영] 우연한 기회로 잠시 승마를 배운 적 있다. 코앞에서 말을 보고 쓰다듬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아, 진짜 크다!’였다. 늠름한 자태에 ‘진검’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까지. 수컷 말은 이런 모습이구나 싶었다.
진검이는 정말 멋졌다. 한눈에도 눈에 띄는 탄탄한 근육은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동물원이나 TV에서 보던 말들도 물론 멋있지만, 지금 눈앞에 진검이는 최고 멋진 말이었다. 나는 몇 주가 지나서야 알았다. 진검이가 ‘암컷'이라는 것을.
편견이었다. 나는 크고 멋진 동물을 보면 우선 수컷이라 생각한다. 갈기가 멋진 수컷 사자를 떠올려보라.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수컷 공작새나 조각 같은 뿔을 뽐내는 수컷 사슴도 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겉모습만 보고 암수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암컷 사자나 공작새, 사슴의 특징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많은 동물의 특징은 대개 수컷의 특성이었다.
책 <암컷들>은 우리가 잘 몰랐던 자연계 암컷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어보니 동물에 관심이 많은 편인 나조차도 암컷의 특성을 잘 모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동물계 연구 자체가 수컷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차별적 신화가 생물학에 도입되면서 동물의 암컷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왜곡되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책 저자 루시 쿡은 <이기전 유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그는 연구실이 아닌 대자연을 종횡무진 모험하며 암컷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부순다. 때론 직접, 때론 다른 연구자의 입을 빌어 소개되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참고문헌을 제외하고도 400쪽이 넘어가는 책을 금세 읽을 수 있는 이유다.
적극적인 수컷과 소극적인 암컷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면, 동물계는 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에 나온 많은 사례처럼 동물 사회가 전적으로 수컷에 의해 지배되는 게 아니다. 보노보를 비롯한 여러 종에서 우두머리 격인 알파 암컷이 관찰된다.
또 흔히 암수를 구분하는 지표인 생식기만 해도 두더지, 아프리카코끼리를 포함한 수십 종의 암컷이 흔히 남근으로 묘사되는 애매한 생식기를 갖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암컷이 무리를 지배하는 여우원숭이의 경우, 종 대부분 암수 크기가 비슷하다. 이분법적 통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보노보는 침팬지처럼 인간과 유전자의 99퍼센트를 공유하는데 암컷들 사이 자매애가 돋보인다. 보노보 암컷은 피를 나누지 않은 암컷들과도 동맹을 형성하고 연대한다. 평화와 조화 같은 가치가 많이 사라진 요즘 같은 때 보노보 사회는 우리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다.
덧붙여, 이 책을 번역한 조은영 선생님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한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다룬 외서를 같이 검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만 재미있는 거 아니냐’며 국내에서 시장성이 없을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와 다른 판단을 한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을 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리는 두고두고 그 얘기를 하며, 다음에 꼭 베스트셀러(가 될) 책을 같이 하자고 말하곤 한다. 암컷들의 또 다른 연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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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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