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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이런 침투가 멈춰지지 않는 것은 미국에 중국을 수용하고 옹호하는 세력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정부 등 민주당 정권과 그 지지·지원 세력들이다. 바탕은 모택동주의. ‘미국의 모택동주의’ 뿌리는 깊고 넓다.
■소련 간첩과 차이나 핸즈
1945년 9월 주중 미국대사 패트릭 헐리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보낸 서한에서 “중국 공산당에 동조하는 ‘차이나 핸즈(China Hands)’가 국무부에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차이나 핸즈’는 1940년대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에 협조했던 미국의 외교관, 언론인, 학자, 군인들을 말한다. 중국을 공산당에 넘겨준 사람들. 세계 공산화를 위해 이들은 장개석 정부에 대한 부정 여론을 조성한 뒤 지원을 중단했다. 반대로 모택동 세력을 밀었다. ‘차이나 핸즈’가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있기 어려웠다.
헐리 대사는 훗날 강연에서 “중국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국무부의 소련 스파이들이었다. 장개석을 지원하는 나의 노력은 소련 간첩 엘거 히스의 꼭두각시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차단했다. 마지막 면담 때 그는 국무부가 중국공산당에게 정보를 빼내 주고 있다는 말에 어떤 흥미도 없는 해골이었다”고 증언했다.
민주당의 루즈벨트와 트루먼은 국무부와 재무부, 군대 등에 중공을 돕는 소련 스파이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두루 포진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보호, 비호했다. 친 중국공산당은 민주당 전통이다.
하버드대의 중국학자 존 페어뱅크는 ‘차이나 핸즈’의 한 사람: “모택동의 대장정은 언제나 기적으로 보인다. 모세의 홍해 기적보다 더 많이 기록되었다...모택동주의 혁명은 수세기 동안 중국 인민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다. 문화혁명으로부터 미국은 배워야 한다.“
이보다 더 중국을 존경할 수 있을까? 그의 ”모택동 상찬은 1960-70년 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모택동주의 열기를 부추겼다.“
모택동은 전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변형해, 혁명은 도시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사상을 만들었다. “중국의 특색을 가진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모택동주의의 중심 주제는 국가권력을 잡기 위해 폭력과 무장반란의 활용. 미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모택동주의는 ‘작은 붉은 책(모택동 어록)’에 집약되어 있다. 모택동이 죽은 뒤 중국에서 이 책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었고 이의 강조는 공산당 내에서도 비판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오랫동안 미국 좌파들의 고전이었다. 지금도 널리 읽힌다. 전 합참의장 마크 밀리 대장도 “공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그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적이 아니다”고 말했다. 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든 ‘비판인종차별이론’의 군대 교육을 옹호했다. 모택동주의와 비판인종이론을 따르며 200개 도시에서 폭력 시위를 벌인 “흑인의 삶은 고통(BLM)”이라는 운동을 변호했다.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그는 ‘좌파 아이비리거’로 불린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그를 “훌륭한 군인”이라고 칭송했다. 심각한 오해다.
■폭력혁명을 위해 모택동주의를 선택
미국의 중국 전문가는 “미국은 망할 운명이라며 혁명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좌파들은 문화 대혁명에 황홀해 했다. 그것이 만든 '새로운 사회주의 남녀'에 감탄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젊은 좌파들이 강하게 끌린 것은 모택동주의의 폭력혁명 게릴라 전술이었다.
미국에서 첫 번째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1876년의 ‘사회주의자노동당.’ 1919년 ‘미국공산당’이 창당되었다. 소련이 지원하고 통제하는 전위조직. 당원들과 동조자들이 소련 간첩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을 지원해 소련 산하의 국가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소련·중공의 분열로 ‘미국공산당’도 갈라졌다. 1962년 창당된 ‘진보노동당’은 소련을 비난하면서 중국공산당 노선을 따랐다. 모택동주의 정당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진보노동당’은 물론 ‘미국공산당’ 내의 젊은 모택동주의자들은 폭력 게릴라 조직을 원했다. 1969년 이들은 ‘미국공산당’의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이란 소련 전위대를 장악했다. ‘미국공산당’은 물론 소련과의 관계도 끊었다. 미국에서 모택동주의가 완전히 정착하는 계기였다. 지도부는 모택동주의를 따라 “체재는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전복되어야 한다”며 미국을 없애고 세계 공산화를 하는 폭력혁명을 주장했다.
이들은 ‘웨더 언더그라운드’ ‘검은표범당’ 등 테러 조직을 만들었다. 모택동 사상과 전술을 교육받기 위해 쿠바로 갔다. 이들은 20여 년간 의회와 정부 청사 등의 폭파 등 각종 테러를 감행했다.
특히 백인 모택동주의자들은 흑인 무장조직인 ‘검은 표범당’을 혁명 전위대로 지목했다. 각종 무기 등을 지원했다. ‘검은 표범당’은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모택동의 ’작은 붉은 책‘을 팔았다.
2013년 ‘흑인의 삶은 고달프다’를 조직한 흑인 여자들도 중국공산당과 연계되었으며 모택동을 숭배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중국 정부의 의제를 추진하는 ‘중국진보협회’의 지원을 받았다. 조직 창설자는 “1년여 간 마르크스와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을 집중 공부했다. ‘작은 붉은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젊은이들에게 그 책 10~15권을 구입해 토론하는 청소년 모임을 조직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현재 백악관 선임고문인 아니타 던은 “‘바이든 세계'의 '양치기”로 불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을 자문해 온 전력 때문. 그녀는 고교 강연에서 “정치철학자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 그에게서 배우라”고 충고했다.
운동권에서 정치인까지 모택동을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택동주의에 빠진 미국인들은 지식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만 ‘모택동 어록’을 읽지 않았다. 미국에 좌파정권을 또는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전술과 전략을 그 책에서 배웠다. 그리고 실천해 오고 있다.
“모택동주의자들이 저지른 집단학살과 폭력은 다행히 미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심리적 강제와 선전술은 갈수록 번지고 있다. 모택동 방식의 집단사고와 강요된 고백, 강제는 수십 년 동안 최고 수준의 대학들과 주류언론들에 확산되어 왔다. 이제 그러한 것들은 정부 관료사회, 군대, 대기업들에도 침투하고 있다.” 미국 전문가의 진단이다. 중국 침투를 저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 사회도 이를 알아야 한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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