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이제 당신이 웃을 차례다

북에디터 이미연 / 기사승인 : 2024-02-28 00: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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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보이스 가이 | 저자: 리 리들리 |역자: 김기택·김민정·김헌용·박환수·현지수 | 책덕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이미연

[북에디터 이미연] 벌써 1년 전 일이다. 책방 담해북스에서 종종 ‘출판 프로세스 훑어보기’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자주 열진 못했지만 출판이 궁금한 분들이 책방을 찾아오셨다. 가끔 다른 이와 함께 가도 되냐는 문의를 받았다. 주로 아이와 함께 오시려는 경우였다. 그런데 그날은 원하는 동행인이 달랐다.

 

“수어통역사와 함께 참석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물론입니다. 함께 오셔야지요.”라고 흔쾌히 답했지만 생각이 깊어졌다. 그 무렵 읽은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의 영향도 있었다. 내가 애써 살피지 않아 무언가를 놓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 그날의 기억을 한참 잊고 있었다. 리 리들리의 <로스트 보이스 가이>(책덕, 2022)를 펼치기 전까지는.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리들리는 ‘목소리를 잃은 남자’다. 생후 6개월 때 뇌성마비로 언어장애가 생겨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건 ‘토커’라는 의사소통 보조 장치다.

 

리들리는 말도 못 하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지만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영국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2018년 우승자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 부제 ‘말 못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말문 막히는 장애 개그’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보며 웃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웠다. 우려와 달리 책은 가벼웠다. 덕분에 읽는 마음도 가벼웠다. 그의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나마 (목소리는 이미 아기 때 변했(!)으니까) 변성기 걱정할 필요는 없었죠.”(사춘기 이야기 중에서 78쪽)

 

“내가 진짜로 취하면 신발은 토 범벅이 되고 셀프계산대와 수다를 떨면서 심지어 일자로 똑바로 걷는다고!”(클럽 입구에서 만취자로 오해받았을 때 97쪽)

 

코미디언의 에세이라 해서 우습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애써 살피지 않은 일’들이 약간의 유머와 뼈 있는 말로 담겨 있다.

 

“호텔 입장에서 접근성 좋은 방이란 결국 서류상에만 표시하는 보여주기식 대응인 것입니다. (중략) 세상의 다른 일들처럼 하나의 대안이 만병통치약일 순 없죠. 장애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까요.”(142쪽)

 

“항상 저를 위한 공간은 남겨주세요. 정서적인 의미의 공간이 아니고요. 말 그대로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거랍니다. 잡동사니를 장애인 화장실에 보관하는 걸 멈춰준다면 훌륭한 출발점이 되겠네요.”(174쪽)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가끔 시설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그때마다 ‘장애 편의 시설 있음’에 체크해 왔다. 책방이 입주한 건물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있고, 주차 시설이 있고, 입구마다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편의 시설이 있나?’ 의문이 생겼다. 리들리 말처럼 장애인 화장실은 잡동사니 보관실이었다. 다양한 장애에 대응하지 못하는 점은 말해 뭐할까. 장애 편의 서비스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어는 2003년에 공식 언어로 지정”(129쪽)되었다는데(참고로 한국수어는 2016년에 대한민국 공용어로 지정), 그 사실조차 몰랐다.

 

장애에 관한 내 잘못된 생각을 바꿔주는 목소리도 있다. 말 못 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하는 건 리들리를 놀리려는 말이 아니다. 아마 그가 이 글을 본다면 토커 그레이엄의 육성이라고 정정해 줄지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든가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건 노력으로 되는 부분이라 해도 정부가 장애인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고 우리 사회가 우리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 한, 저는 솔직히 저 같은 사람들의 상황이 크게 변하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136쪽)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한 발짝 물러서서 귀를 기울여주세요. 제 몸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공간과 시간을 주세요. 평생 장애와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답니다. (중략) 단지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지레짐작하거나 저를 위하는 마음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은 사양할게요. 그것만 지켜준다면, 제 마음이 아주 홀가분할 거예요.”(175쪽)

 

<로스트 보이스 가이>의 역자는 총 5명이며,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리들리의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 기사 제목에 ‘장애 극복’이라는 표현을 보고는 “로스트 보이스 가이는 자신의 장애를 극복했다기보단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리들리 이야기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340쪽)고 밝혔다.

 

이 말처럼 장애 극복 스토리의 주인공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다. 더 많은 리들리를 만나고 싶다.

 

마지막으로 리들리의 말을 전한다. “다들 이 책을 신나게 즐겨주세요. 장애인을 보고 맘껏 웃으시라고요. 하지만 다들 명심하세요. 돈은 내셔야 한다는 거!”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이제 당신이 웃을 차례다.

 

  /북에디터 이미연

북에디터 이미연 | 출판업계를 뜰 거라고 해 놓고 책방까지 열었다. 수원에 있지만 홍대로 자주 소환된다. 읽고 쓰는 일을 사랑한다. 인스타그램 담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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