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완성되지 못한 책등

북에디터 유소영 / 기사승인 : 2024-02-06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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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달린 셜록 홈즈 | 아서 코난 도일 저, 승영조 역 | 현대문학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유소영] 셜록 홈스(외래어 표기법에 따름) 팬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바로 <주석 달린 셜록 홈즈>(책 제목은 원래대로 표기)다. 

 

이 책은 셜록 홈스에 관한 세계 최고 권위자인 레슬리 S. 클링거가 홈스 탄생 150주년을 기리며 방대한 주석을 달아 출간한 책이다. 내가 구입했던 책은 북폴리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1, 2권이다. 판형도 일반 책보다 클뿐더러, 1권은 1004쪽이었고 2권은 1224쪽에 달하는 엄청난 책이었다. 

 

본문디자인을 2단으로 하여 본문 옆에 본문만큼 많은 주석을 깨알같이 달아놓았다. 본문 위치에 맞게 주석 넣기도 힘들었을 텐데, 거기에 시드니 패짓과 W. H. 하이드의 삽화 수백 점도 같이 실려 있다. 아마 담당 편집자는 이 책을 편집할 때 정말 큰 고통을 겪었으리라 예상된다. 

 

출판사와 편집자의 고생과 희생으로 완성되었을 이 책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셜록 홈스 작품은 초등학교 때 다 읽은 지 오래였지만 1000개가 넘는 주석은 셜록 홈스의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팬과 학자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요 쟁점부터 당시 시대 배경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죽은 줄 알았던 셜록 홈스가 왓슨 박사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는 책장수로 분장하느라 들고 있었던 책 5권이 무엇인지에 대해 책 수집가들이 끊임없는 논쟁을 하고 있다는 주석이 달려 있다. 코난 도일이 묘사한 홈스의 대학 시절을 근거로 들어 그가 다녔던 대학교는 옥스퍼드다, 아니다 케임브리지다 하는 논쟁도 주석으로 달아놓았다. 

 

저자 코난 도일이 여러 단편을 쓰며 헷갈려서 잘못 쓴 부분, 영국판 원고가 미국으로 넘어가며 바뀐 부분도 모두 찾아내서 주석을 달아놓았다. 새롭게 번역된 판본을 읽는 즐거움에 겹쳐 주석을 읽는 재미까지 있다.

     

나는 당시 <주석 달린 셜록 홈즈>를 2권까지 샀다. 완전히 몰입하여 책을 읽은 뒤 책장에 꽂았는데, 책등에 셜록 홈즈 실루엣이 2권에 걸쳐 이어져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셜록 홈즈 머리가 거의 완성되어 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이건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 아닐까?' 

 

1권을 다시 꺼내 보았다. 1권 뒤표지에는 <주석 달린 셜록 홈즈 3권>이 2008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뒤표지에 있는 마틴 가드너의 추천사에도 “세 권으로 나뉘어 실린 수많은 주석은...”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 원서는 3권임을 알았다. 

 

2권도 꺼내서 살펴보았는데 2권 뒤표지에는 1권에 있던 출간 예고가 없어졌다. 다소 불안한 마음이 생겼지만, 한국어판 1권은 2006년에, (2007년에 출간 예정이던) 2권은 2009년에 출간되었기에 3권 출간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번역만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 책등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3권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로서 1, 2권 출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는데 판매가 좋지 못해서 계약 기간이 남았음에도 3권 출간을 포기했다거나, 1, 2권을 출간하는 사이 계약 만료 기간이 도래했고 재계약을 포기했다거나 하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어떻게 상상해도 판매량이 좋지 못했던 게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북폴리오 출판사 버전은 절판되었고, 2013년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6권짜리로 출간되었다. 차례를 보면 원서 3권이 6권으로 분할되어 출간된 것 같다. 주석이 궁금해서 장편이 실려 있는 나머지 권을 살까 했지만 판형이 다르고(현대문학 출판사 버전은 일반 소설 판형이다), 책장에 꽂아도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셜록 홈스 실루엣은 완성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고 또 아쉽다. 

 

나는 빈자리에 비슷한 두께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꽂아놓고 허전함을 달래는 중이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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