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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두 사람 모두 포럼의 좌파 정체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은 밀레이는 물론 트럼프 대신 핵심 조력자인 캐빈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까지 초청했다. 그 의도는 세계정치가 보수우파들에 의해 지각변동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로버츠를 오게 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다보스의 중심인물들은 ‘반 트럼프’를 넘어서 ‘트럼프 증오자들’로 불린다. 그들은 오랫동안 트럼프 없애기에 앞장섰다. 그의 재선을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로버츠의 얘기를 듣기로 한 것은 트럼프 승리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복귀가 몰고 올 파장이 얼마나 클지 잘 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압승으로 다보스는 공황 상태”
밀레이 연설의 여파는 컸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창설자는 연설에서 밀레이를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연설 도중 나가고 말았다.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밀레이의 경고와 훈계를 끝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밀레이의 연설에 대해 “나치즘이고 거짓말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부끄러워하고 슬퍼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물론 보수우파들 사이에서도 밀레이의 자유지상주의 경제정책 추구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냉엄한 비판에 세계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트럼프 충격은 더 컸다. 트럼프를 대신한 로버츠의 발언은 ‘다보스 군중’이라 불리는 글로벌리스트들의 폐부를 찔렀다. 어떤 면에서 밀레이보다 더 신랄했다.
트럼프는 다보스 포럼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2020년 다보스에서 각국 지도자들에게 “글로벌 협조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당신들의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글로벌리즘의 본산인 다보스 포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포퓰리즘을 설파한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선거에 이겨도 환호할 사람은 다보스에는 별로 없다. 대신 첫 번째 예비선거에의 트럼프 압승에 포럼에 모인 “글로벌주의자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백악관의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레리 커들로는 현재 ‘폭스 뉴스’의 진행자. 그는 “트럼프 승리에 글로벌주의자들과 다보스 무리들, 중국은 겁에 질려있다. 유럽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러 더크로 벨기에 총리 및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은 “트럼프가 돌아오면 유럽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창 중국 총리는 연설에서 “차별적 무역 장벽이 글로벌 경제에 위협”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입품에 더 많은 관세를 매길 것으로 예상되는 트럼프의 복귀를 우려한 발언이었다.
‘제이피 모건’은 세계 최대의 종합금융회사. 최근 보수우파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차별 대우로 19개 주 정부 법무장관들의 공동 항의 서한을 받을 정도로 좌파 성향이 확실하다. 사장 제미 다이먼은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꼽혔다. 민주당 거액 정치자금 기부로 유명하다. 그런 다이먼의 다보스 발언은 월스트리트를 장악해 온 반 트럼프 좌파들의 기류가 급변했음을 상징했다.
그는 현지 방송 대담에서 “트럼프는 중국과 나토, 불법이민 문제에 대해 옳았다. 경제를 아주 잘 성장시켰다. 세금 개혁을 했다. 국민들이 지지하는 이유다. 민주당 사람들은 트럼프 정책 에 대해 더 조심스럽게 얘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든의 재선 운동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성향 등으로 미루어 그가 한 말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트럼프 대신 초청된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은 엘리트들보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 포퓰리즘과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의 정치이념을 분명하게 밝혔다.
헤리티지는 보수우파의 싱크탱크다. 클린턴·오바마·바이든 정부의 정책과 인물을 제공해 온 좌파 브루킹스 연구소와는 대척점에 있다. 헤리티지는 트럼프의 첫 번째 정부 출범 전부터 정책 마련에 깊숙이 관여했었다. 재단은 오래전부터 재집권 준비를 해 오고 있다.
■“중국에 조아리는 글로벌주의자들”
로버츠 이사장은 다보스 포럼 초청을 받은 뒤 쓴 칼럼에서 세계경제포럼과 글로벌리스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위선과 독선에 가득 찬 악명 높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는 환경론자들이 보통의 미국인들과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지를 헤리티지로부터 듣고 싶어 한다.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말라’는 성서의 원칙이 떠올랐다. 그러나 ‘미국의 꿈’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잊힌 사람들의 소리를 좌파 엘리트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기로 했다.”
로버츠에 따르면 글로벌주의자 엘리트 집단인 정부, 언론, 대학과 연구소, 국제기구, 기업, 예술계는 수세기 동안 보통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착취하며 이익을 챙겼다.
다보스에 모이는 국가 지도자들은 민족국가를 거부한다. 자신들의 국경 안보를 무시한다. 학자와 언론인들은 노골적으로 국민들을 무시하고 그러한 좌파들의 목적에 복종한다. 장군들은 임전 태세보다는 마르크스 이념인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추진한다. 기업인들은 중국의 시진핑 같은 독재자에게 일자리를 내보내고 자국 사람들에게는 다양성 등을 위해서라고 강의한다.
글로벌주의자 엘리트들은 보통 사람들의 민주 주권과 경제 기회를 희생하면서 중국에 조아리고 환경 극단주의를 숭배한다.
로버츠는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자유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영국이 EU에서 빠져나온 브렉시트가 일어나고 전 세계에서 트럼프, 헝가리의 빅토르 오반 총리, 밀레이 대통령, 네덜란드의 헤이르트 빌더러스 차기 총리와 같은 애국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포퓰리스트들이 떠오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로버츠가 참가한 토론회 질문도 승리 전망 등이 아니었다. 이미 재집권을 기정사실로 하고 트럼프의 2기 내각이 어떻게 구성될 것이며 추진할 정책 방향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로버츠는 “다보스 포럼에 초청을 받은 것이 충격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트럼프를 정치계에서 몰아내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 자신을 부른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그는 사회자가 “세계경제포럼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옹호론자들은 트럼프에 의해 ‘거품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자 “누구든 다보스 포럼이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한다고 주장한다면 웃기는 일이다. 다보스에서 '독재'라는 단어를 쓰고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웃음거리”라고 일축했다. 다보스의 엘리트들은 국경 안보에서 기후 변화에 이르는 문제에 대해 현실을 속여 ‘X’를 ‘Y’라고 국민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가 아니면 워싱턴에 자리는 없다”
그는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내각 구성의 원칙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정치 엘리트들과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이 보통 사람들을 장악하며 누리는 권력들을 무너트리는 하나의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다음 보수정권에 기용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겠다. 다음 정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가져야 할 의제는 세계경제포럼이 지금까지 제시해 온 모든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통째로 그것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행정부를 개혁하려는 47대 대통령의 노력에 협조하지 않는 어떤 인물도 워싱턴 디시에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세계경제포럼이 구상한 좌파 정책과 그것을 ‘검은 정부’ 내에서 실행해 온 좌파 인물들에 대한 전면 거부를 밝힌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두 번째 정권에 기용할 인물들을 고르기 위해 2만여 명 이상에 대한 자료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평생 워싱턴DC에서 단 하룻밤도 자 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워싱턴과 거리를 두었기에 ‘워싱턴의 사람들과 정치’를 몰랐다. 그래서 인사에 실패했다. 워싱턴의 좌파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임기 내내 끊임없는 공격과 방해를 받았다. 헤리티지가 인물 선정을 미리 서두른 것은 그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이념 정체성을 중요하게 확인하고 있다.
헤리티지는 전직 장관과 각 분야 전문가 400명이 참여한 정책 방향에 관한 보고서를 이미 만들었다. 보수주의 구현을 전제로 각 부처별 개혁과제와 정책방향·의제를 담았다.
국방정책의 경우 중국에 대한 방어가 최우선 정책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재래군사력에 대한 공동부담을 늘려야 하며 한국의 재래군사력이 북한에 우세하도록 증강하는 것이 주요 방향이다. 한국에서 떠도는 주한미군과 관련한 소문들은 내용에 없다.
다보스 포럼은 트럼프 승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다보스 사람들은 트럼프 재선을 막기 위해 여전히 열심히 돈을 대고 있다. 그런 만큼 트럼프 재선은 험하고도 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연방 선거법도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도 없다. 민주당이 지사와 의회를 장악한 주는 얼마든지 선거규정과 절차를 유리한 방향으로 고칠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도 그랬다. 그 밖의 변수도 숱하다.
그러나 승리 여부와 관계없이 분명한 것은 트럼프와 그 세력들은 이념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국가 운영의 바탕으로 본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세력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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