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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경기도보다 조금 더 넓은 크기. 인구도 260만 명 정도. 그마저도 카타르 사람은 31만 명밖에 되지 않으며 거의 도하에 모여 산다.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 도대체 그 작은 나라에서 누가 본다고, 무엇 때문에 수많은 경기장을 짓고 큰 대회들을 개최할까? 웬만한 대국도 한 번 열기 힘든 대회를...
■ 미국의 대리인이며 이란의 대리인
그렇다고 카타르를 국제 스포츠의 새로운 거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오래 전부터 국제정치에서 독특한 역할을 해 온 불가사의한 존재다. 지난해 한국의 은행에 묶여있던 이란 돈 60억 달러가 미국의 압력으로 카타르로 갔다. 카타르가 강대국들과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카타르는 미국의 대리인이면서 미국의 적국이라는 이란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미국보다 이란을 위해 일한다. 미국의 오바마‧바이든 정부와 이란은 그런 카타르를 서로 활용해 왔다.
2022년 11월 바이든 정부는 카타르를 주요 비 나토 동맹국으로 특별 지정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장기 대리전쟁을 위한 바탕을 구축한 것. 카타르가 금전 지원과 군사장비 판매를 위한 나토의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작지만 엄청난 부를 지닌 이 나라는 국제정치의 모든 주요 행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는 야심찬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을 아우르는 ‘무슬림 브라더후드’의 본거지. 하마스, 알카에다 등 이란이 배후에 있는 테러 조직들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막대한 후원자며 그들의 은신처다. 하마스 지도부들은 110억 달러 재산을 가지고 카타르에서 호화 생활을 즐긴다. 카타르는 탈레반들에게 월드컵 경기장 건설 10년 동안 중장비 사업 특혜를 주었다. 월드컵은 그들에게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다
그러면서 카타르는 2007년부터 23년까지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61개 미국 대학에 57억 달러를 기부했다. 정부·의회 로비 활동에 60억 달러 가량을 썼다. 브루킹스에 1,500만 달러 등 좌파 연구소들에도 많은 돈을 주었다. 그 작은 나라에 코넬대 의대 등 미국 6개를 포함한 20개 외국대학을 유치했다. 반 이스라엘 선전 활동인 동시에 이란과 테러 조직과의 관계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부와 로비, 국제대회 유치 등의 궁극 목적은 무슬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지지를 확산하는 것이다.
지금 카타르는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 석방은 물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중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수상 베나민 네타냐후는 “카타르는 유엔이나 적십자보다 더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카타르에서 누군가를 ‘골칫거리’로 부르는 것은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큰 화를 입을 수 있는 가장 질이 나쁜 욕이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중재자인 카타르가 하마스를 보호하는 한편 이스라엘 국민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이란의 정보공작 수단으로 인질 협상을 활용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심한 말을 한 것이다.
■ 이란 ‘인질 사업’의 하부조직
시아 파 이란과 수니 파 카타르는 종파는 다르지만 세계 최대의 유전을 공유하는 등 아주 가까운 관계다. 그러나 카타르는 이란의 하부조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2015년 카타르 왕족 28명이 이라크에서 사냥 여행 중 납치되었다. 납치범들은 이란이 지원하는 이라크의 준군사조직 ‘카타이브 헤즈볼라’였다. 인질 가운데 2명은 현재 카타르 총리 모하메드 알 타니의 친척. 그러나 16개월이 지나서야 카타르 정부는 인질 석방 교섭을 시작했다. 이란이 냉담했기 때문.
카타르는 시리아 정권 지원 비용 이외에 테러조직에게 10억 달러 이상을 주었다. 2년만인 2017년 인질은 풀려났다. 카타르 총리조차 자신의 친척들을 빼내는데 2년이 걸릴 정도로 이슬람 공화국의 서열체계에서 카타르의 위치는 낮다.
‘인질 사업’은 이란의 전통적 대외정책 수단이다. 이란은 1979년 미 대사관을 점령하고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삼았다. 그 이후 이란과 헤즈블라, 카타이브 헤즈블라, 하마스 등 이란의 대리 테러 조직들은 끊임없이 미국인 등 인질을 납치했다.
2009년 이란은 실수로 국경을 넘은 미국인 3명을 납치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인질 협상을 이란과의 비밀 외교협상 통로로 활용했다. 이슬람과 이념의 궤를 같이하는 오바마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돕고 이란을 지역 맹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했다. 당시 협상 대표가 현재 CIA 국장인 윌리엄 번스와 백악관 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2015년 이란과의 핵 협정이 맺어졌다. 오바마는 이란에게 인질 석방금으로 이란에게 1.7억 달러를 주었다. 인질이 공식 현금제공 수단이 된 것이다.
이 협상 과정에서 카타르는 미국과 이란 사이를 오가며 중개인 노릇을 했다. 양쪽 모두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했다.
미국은 카타르가 이란 산하 테러 조직을 지원할 만큼 이란과 가까울 뿐 아니라 이란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잘 안다.
이란도 카타르가 무슬림 세력에 영향력을 행사토록 하는 미국의 공식 기관이며 국무부, CIA, 각종 정보기관의 비밀자금을 분배하는 은행 역할을 하는 것을 잘 안다.
미국과 이란은 서로 카타르를 활용하며 정치·외교 목적을 달성한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와 이란은 짐짓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체 할 뿐이다.
미국이 한국에 있던 이란 돈 60억 달러를 인질 석방 대가로 카타르로 보내게 한 것도 이란의 ‘인질 사업’이 성공한 결과. 카타르는 미국과 이란의 하수인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얼굴을 가진 카타르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종전을 어떻게 중개할지 궁금하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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