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세 명의 북에디터가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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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 |
[도도서가=북에디터 정선영] 잘 알려진 책 중에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읽지 않은 책이 꽤 있다.
내 경우 줄거리가 자주 회자되는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일이 꽤 있는 듯하다. 주로 세계 고전 문학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그러했다.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 홀워드가 그린 아름다운 자신 모습에 반한 나머지 그 초상화를 자신의 분신처럼 느낀다.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그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하고 소망한다.
그의 바람대로 자신은 아름다움과 젊음을 간직한 반면 그가 쾌락과 타락에 빠질수록 초상화 속 얼굴은 묘하게 사악한 얼굴로 바뀌어간다. 화가 바질에게 이 흉칙한 모습 초상화를 보여주게 된 도리언은 수치심에 그를 죽이고, 이 죄를 덮기 위해 옛 지인을 협박하여 사체를 처리한다.
이후 그는 환영 등에 시달리다 새 삶을 살기로 한 결심한다. 초상화를 없애려고 화가 바질을 살해한 칼로 초상화를 찌르지만, 오히려 자신이 칼을 맞는다. 초상화는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그는 늙고 흉측한 얼굴로 가슴에 칼을 맞고 쓰러진 채 발견된다.
책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의미에서 나는 여러 번 놀랐다.
우선 도리언 그레이의 첫사랑 시빌 베인이 죽었을 때다. 결혼을 약속했던 도리언 그레이의 이기적 변심에 그녀는 자살한다. ‘어라?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그러다 화가 바질이 살해당했을 때 나는 확신했다. ‘아, 나는 이 책을 처음 읽는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도리언 그레이의 지독한 이기주의에 여러 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로 앞서 말한 것처럼 살인 두 번을 포함하여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점점 더해가는,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사람을 질리게 했다.
본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 존재라 한들, ‘어쩜 사람이 저럴 수 있지?’ ‘저러고 잠이 온다고?’ 나는 마치 사회면 뉴스를 보고 있는 심정이 되어 혀를 내둘렀다.
사람을 죽이고도 공부하다 지친 소년의 얼굴이 되어 깊은 잠에 빠진 도리언 그레이, 사체를 처리하고는 파티에 참석하여 헨리와 여전히 탐미주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도리언 그레이, 그러고도 일말의 죄책감은커녕 조금의 불쾌한 감정도 참지 못해 아편굴을 찾는 도리언 그레이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책 속 도리언 그레이의 죽음이 과연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는가?
젊고 아름다운 그의 신체에 노쇠함과 추악함이 깃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형벌이 될 수 있는가. 이미 죽은 육신인데 말이다. 애초에 그가 자신의 분신처럼 여긴 초상화를 없애려고 한 것도 살인에 대한 자신의 불리한 증거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이것이 전통적인 규범과 도덕에 반발한 결과 탐미주의적이고 퇴폐적인 특징을 띤 세기말 문학인가. 문학에 문외한인 나는 어쩐지 자꾸만 사회면 뉴스를 보는 시각이 되어버린다.
책에 적힌 대로 ‘보통 사실의 세계에서는 사악한 자들이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한 자들이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길 바란다면 지나친 이상주의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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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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