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공포만화 거장이 그린 고양이

유소영 북에디터 / 기사승인 : 2023-10-11 10: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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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 | 이토 준지 지음 | 대원씨아이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활동 중인 네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정선영 북에디터

[북에디터 유소영] 괴기·공포 만화의 거장이라고 하면 단연 나는 이토 준지를 떠올린다.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토미에>는 그가 얼마나 그로테스크한 만화를 잘 그리는지 보여준다.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초특급 미녀이자, 매 단편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항상 왼쪽 눈 밑에 눈물점이 있는 토미에. 토미에를 좋아하던 남자들은 그의 가학적인 취급에 결국은 정신이 이상해져 마지막에는 그를 잔인하게 죽이게 된다. 하지만 토미에는 죽이고 또 죽여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난다. 음울한 분위기에 무한한 재생과 분열로 괴기스러움을 한껏 표출한 작품이다.

 

이토 준지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소용돌이>는 어느 마을에서 소용돌이와 관련해 벌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초·중반부는 소용돌이를 소재로 한 단편이 이어지지만 후반부에 가면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배경이 온통 소용돌이가 되어 그 효과가 더욱 강렬해지는, 이토 준지의 ‘선’에 대한 집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실제로 이토 준지는 치기공사였던 전직을 살려 작화용 도구를 직접 제작하여 세세한 선을 그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이토 준지 작품에 관해 설명한 이유는 이렇게 황당하고 엽기적이고 징그러운 만화를 그려온 만화가가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토 준지의 고양이 일기 욘&무>는 그가 결혼하면서 함께 살게 된 고양이 두 마리욘과 무의 일상 생활을 그린 만화다. 특유의 개그 센스가 돋보인다.

 

이토 준지 자신도 이 만화에 ‘J군’으로 등장한다. 원래는 애견파로 고양이를 꺼림칙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양이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츤데레(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일본의 인터넷 속어)’다.

 

아내인 A코가 친정에서 데려온 고양이인 욘을 처음 봤을 때 등에 해골 무늬가 있는 것을 보고 집에 저주가 왔다며 몹시 두려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곧 고양이의 귀여움에 이성을 상실하며 욘에게 뽀뽀를 하고, 나중에는 고양이용 장난감을 흔들며 욘의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무는 길고양이 출신인 욘과 달리 누구나 잘 따르는 성격이다. 어쨌거나 두 고양이 모두 J를 잘 따르지 않는다. A코의 손가락에는 ‘쭈쭈(어릴 때 어미젖을 빨던 버릇이 남아 그 흉내내는 것)’를 하면서도 그것을 몹시 부러워하는 J에게는 도통 해주지 않는다. J는 결국 “쭈쭈 해! 나한테도 쭈쭈 해!”하고 폭발하기에 이른다.

 

J의 수난은 계속 이어진다. 수난이라고 하지만 그의 공포스럽고 기괴한 그림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개그 덕분에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된다. 갸릉갸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고양이를 만지려다 손을 물리거나, 마감 때 바닥에 누워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자기 작품에 나오는 민달팽이로 착각하여 놀란다거나, 고양이가 집안에 싸 놓은 똥, 오줌을 지뢰 피하듯이 피하다 못해 고양이가 재채기하며 온 사방에 묻혀 놓은 콧물까지도 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림은 평소대로 공포 만화처럼 그려놨다. 덕분에 고양이도 공포물에 나올 법한 음산한 얼굴로 그려져 있다. 자기 얼굴도 망가뜨려 그려놓았는데 심지어는 아내 얼굴마저도 뺨에 광대뼈와 팔자 주름처럼 보이는 필요 없는 선을 그려 넣는 바람에 아내에게 혼이 났다는 에피소드가 책에 소개돼 있다. 이러한 그림체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개그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는 이토 준지만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욘과 무는 지금은 둘 다 수명이 다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많은 독자가 이 작품의 후속작을 원했으나 이토 준지는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는 욘과 무에 비해 조용한 편이라서 후속작은 어렵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토 준지 작품은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일본에서는 영화화된 작품도 꽤 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유소영 북에디터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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