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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
헝가리를 보자. 헝가리는 인구를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외국인 유입을 선택하지 않았다.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민족과 국가 정체성을 지키며 헝가리가 생존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보았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헌법 개정이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원칙.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과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정의한다. 오르반은 출산정책을 국가의 절대 과제로 추진하기 위해 그것의 근본 가치를 헌법에 새겨 넣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국민들이 깊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다. 국민 개개인 의식은 물론 사회 인식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어떤 유인이나 우대정책도 소용없다고 봤다. 그런 다음 정부는 차례차례 가족을 돕는 정책들을 실천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하는 헌법
2010년 2/3 의석을 차지하며 재선된 오르반 총리는 11년 헌법을 고쳤다. 당시 출산율은 1.3. 그래도 지금 한국 출산율의 거의 2배다. 1978년 2.25를 기록한 이후 1.2-1.3 대까지 떨어지자 오르반은 국가 위기라고 판단했다.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유일하게 올바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은 국가가 국민들이 가족을 꾸리도록 돕고, 가족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국가의 모든 기능이 가족 친화적이 되어야 하며 가족 정책은 어머니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아이를 낳는 것이 모든 기쁨의 근원”이라는 오르반은 결혼, 아이, 가족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방어선이 헌법이라고 말했다. 헌법부터 고치는 중대 결단을 했다.
헝가리 헌법 전문은 “가족과 국가가 헝가리 공존의 주요 틀을 형성한다”고 선언했다. 가족이 곧 국가라는 의미. 그만큼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L조’는 “헝가리는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성립된 남녀 결합인 결혼제도와 가족을 국가 생존의 기초로서 보호할 것이다. 가족 유대는 결혼과 또는 부모와 자식 관계에 바탕을 둔다. 헝가리는 아이를 낳는 결심을 장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헌법의 정신에 따라 가족 구성을 위한 경제 부담을 덜어주는 많은 정책들을 실행해 나갔다.
가족 지원에 국민총생산 5% 투입. 아이를 많이 가질수록 부모들 소득세율이 낮아지도록 했다. 4 자녀 여성은 평생 개인소득세 면제. 25세 이하 소득세 폐지. 출산을 기다리는 부부에게 34,000 달러의 무이자 대출. 이 대출은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 갚을 필요가 없다. 여성이 아이를 가질 때 학자금 대출 상환 중단. 3 명의 아이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학자금 대출 상환 면제. 시험관 시술 무료. 생식 클리닉 일부를 국유화한 후 체외수정 무료...
현재 출산율은 1.548. 해마다 조금씩 늘어 10년 전보다 24% 증가. 결혼도 43% 늘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는 무슬림 인구가 많아 헝가리보다 출산율이 0.1-0.2 가량 높은 곳이 있다. 그러나 헝가리는 전체 1천만 인구 중 무슬림 인구는 5천명이 되지 않는다. 헝가리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출산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념전쟁의 도구인 이민정책
헝가리는 왜 이민정책을 반대하는가? 오르반의 출산 우선정책은 유럽의 이념전쟁 속에서 헝가리를 지키려는 고육지책이다.
2021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헝가리를 방문, 오르반 총리에게 무슬림 난민들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르반은 소셜미디어에 “교황에게 ‘기독교 헝가리’가 없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적었다.
오르반은 헝가리가 기독교 문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 포퓰리스트인 그는 교황과 EU 등 좌파 글로벌주의자들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무슬림 난민 수용은 기독교 문화의 종말로 보았다. 가톨릭 신자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교황을 “공산주의를 세계에 퍼트리는 악마”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헝가리는 1541년부터 158년 동안 무슬림의 오스만 제국 통치를 겪었다. 1945-89년에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오르반은 14-15세 때 공산주의 청년동맹 사무총장이었다. 그러나 군 복부 중 마르크스 이념을 버렸다.
오르반은 헝가리 역사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좌파 글로벌주의자들이 무슬림 인구 확산으로 헝가리 민족 정체성과 국가 주권, 종교전통 붕괴를 노린다고 보았다. 그래서 EU와 독일 등의 강력한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슬림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것이다.
좌파들은 이런 오르반이나 밀레이,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들을 ‘백인 민족주의자’라고 부른다. 원래 ‘백인 민족주의자“는 다른 종족과는 분리된 백인만의 나라를 원한다. 일종의 인종차별주의자들. 그러나 좌파들은 보수주의 민족주의자들을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 민족주의자‘라는 오명을 덮어씌운다. 한국에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좌파가 아니면, 정확한 개념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윤 대통령에 주는 헝가리의 교훈
헝가리는 한국에 많은 교훈을 준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오르반 총리가 헌법에 가족 정신을 먼저 정립한 것은 더 없이 중요한 정치 교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른바 ‘5·18 정신’을 헌법에 넣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헌법에 들어가야 할 정도의 국가 과제인가? 국가 생존이 달린 일인가? 국민들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여전히 역사나 정치현실에서 논란이 많은 사안을 국가의 기본원칙인 헌법에 왜 넣으려 하는가? 무엇 때문에 그런 발상을 하는가?
그러니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이념 정체성을 의심한다. 총선을 앞두고 의사 집단을 계급투쟁 벌이듯 공공의 적으로 모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그런 의문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은 헌법을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된다. 오르반 총리의 확고한 이념 정체성에 바탕을 둔 정책 추진을 배워야 한다. 국가 생존을 위해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 대통령이 될 때 어떤 집단과 세력이 지지해 주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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