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트리트북스] 불편함이 몰입이 되는 순간

북디자이너 강은영 / 기사승인 : 2026-03-11 00: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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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역자: 이세욱 | 열린책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여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디자이너 강은영] 광고의 시대. 제법 여러 번 동일한 책 광고가 나를 따라붙었다. 

 

주인공은 바로 <나는 그대의 책이다>.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부를 정도로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나도 그를 좋아하던 독자 중 하나였다. <개미>를 읽고 그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그의 상상력과 통찰에 반했다. 그렇게 그의 책을 모두 섭렵하던 중 지나칠 수 없는 책을 만났다. 제목은 <여행의 책>. 

 

갑자기 다른 책 이야기를 하는가 싶겠지만 그렇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1998년 <여행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바로 그 책이다. 2026년, 새 옷을 입고 새 이름으로 돌아왔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있는 책입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저는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습니다. (9쪽) 

 

새 옷을 입은 이 책은 제목을 인쇄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없으면 양각으로만 쓴 제목이 보이지 않는 표지. 오로지 컬러만 보이는 표지다. 

 

책 배를 보니 알록달록하다. 어라? 다시 보니 책 배 인쇄가 아니다. 제본된 책 가장자리에 디자인, 색상, 글자를 인쇄하는 특수 후가공 기술을 쓰지 않았다. 대신 내지에 색지를 사용해 내지가 보이는 모든 면이 알록달록하다. 

 

본문 종이를 다섯 가지 색상지로 구성했다. 더해서 색상만 달리하지 않고 서체, 레이아웃, 배경 이미지도 다섯 가지다. 

 

북디자이너로서 이런 책을 보면 부러움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내가 북디자인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독자에게 이런 감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이 책은 공기, 흙, 불, 물 4원소 세계를 탐험하며 자기 내면으로 이끈다. 이야기책이자 상상력 가득한 명상 책이다. 한 편의 긴 시 같은 느낌을 주는 묘한 책이다. 

 

색상이 제법 자극적이라 실제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점이 참 묘하다. 빠르게 넘기지 못하니 한 문장씩 꼭꼭 씹어 읽게 된다. 

 

앞서 <여행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당시를 떠올렸다. 양장 위에 작가 얼굴을 인쇄한 겉표지를 씌운 표지였다. 원제를 직역한 <여행의 책>이란 이름 때문에 여행 안내서로 오해한 독자가 나만이 아니었다. 

 

얇고 가볍지만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그 책.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뉘며 내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어쩌면 모든 책은 스스로 받아들일 시기가 따로 있지 않을까. 

 

내 기억 속 ‘불호’에 가깝던 책의 이미지가 ‘호’로 바뀌는 순간이다. 광고로 만났지만, 새 옷과 이름을 얻은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디자인이 독서에 새 경험을 줄 수 있음을 다시 실감했다.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끝으로 마지막 페이지가 퍽 마음에 든다. 

 

파란 종이 위 넘실대는 그래픽과 함께 자리한 두 줄.

 

오직 그대뿐이다. 

안녕. (164쪽)

 

 

|강은영. ‘표1’보다 ‘표4’를 좋아하는 북디자이너. 인스타그램 디자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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